하늘이 노랗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온몸에 기운이 쑥 빠졌다.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아 생각했다.
정신차리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어.
그렇지않아도 들어가기 싫은 집이였는데 쫓겨 났으니 좋은 일이잖아?
코로나? 별거아냐. 감기랑 똑같은 거랬어. 그리고 나은 사람이 더 많잖아.
아니 내가 무슨 코로나야? 아직 검사도 안받은 걸?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이미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이 밤에 선별진료소는 문을 닫았을 거야!
그렇담 나 혼자 있을 곳을 찾아야 한다.
가을이가 알려준 그곳엔 가기 싫다.
어디로 가야 하지?
그래!!! 엄마네 비어 있는 집으로 가자!
나는 자리에서 불큰 일어나 걸었다.
나 하나도 안아프단 말야!!
내가 무슨 코로나야?
그런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목도 아파왔다.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이 세상의 고통이란 고통은 다 내 온몸에 쓸어 담은 듯
그래도 걸었다.
차를 탈 수는 없었다.
119를 부르는 것은 더 싫었다.
빨리 집으로 가자! 오로지 그 생각 밖에는 없었다.
어떻게 걸어 왔는지 모른다.
10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엄마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쓰러졌다.
꿈속에서 나는 지옥불에 떨어져 있었다.
펄펄 끓는 지옥불 속에서 살려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다가 깨어 났다.
뭉클! 부드러운 것이 내 손에 들어왔다.
뭐야? 눈을 떠보니 고양이가 내 품에 꽉 안겨 있었다.
뭐지? 여긴 어디지? 방안의 풍경들이 익숙하다.
초록대문집이 아니야 여긴! 드디어 난 탈출했어! 하하하!!!!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바람에 고양이가 눈을 떴다.
"냐옹아! 너 여기까지 따라왔어? 반가워"
나는 고양이를 안고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아! 나코로나지? 안돼!!!"
고양이를 얼른 내려놓았다.
어랏! 그런데 머리가 안아프네? 열도 없네? 목구멍도 안아파! 어떻게 된거지?
나 어제 죽도록 아팠는데 지금은 말짱하잖아?
"나 다 나았나봐 고양아"
"냐옹"
내 물음에 고양이가 답을 했다.
"너 왜 날 따라온거야?"
고양이는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날 지켜 주젰다고 했잖아요"
그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널 돌봐주겠다고 했지!
미안해! 약속을 깰 뻔했네.
"난 여름이야!! 넌 봄이라고 해! 우리 같이 지내자"
"갸르릉 갸르릉"
고양이가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나는 고양이를 꼭 안아주었다. 따뜻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이 텅빈 빈집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보건소 앞 선별진료소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한채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아, 너 왜 여기 있어?"
옆줄에 서있던 남자 분이 나를 불렀다.
맙소사! 마이클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코로나.."
"뭐야? 너 검사받으러 온거야? 나도 코로나 검사 받으라고해서 왔다. 일본 갔다 왔거든"
선생님은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도 없는데?"
"어젠 열 많이 났어요. 목도 아프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이런이런!! 너 어디 갔었냐?"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 서있었고, 검사결과 무증상이 나왔다.
다행이였다. 마이클 선생님도 음성판정을 받았지만 자가격리 2주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 2주간을 어떻게 견디지? 답답해서? 난 말야! 혼자 있는게 제일 싫은 사람이거든"
선생님이 말했다.
"헐! 선생님 모솔(모태솔로) 아니였어요?"
"무슨 말이냐? 난 모태솔로 아니야. 연애를 두번이나 했어야"
선생님 말씀에 난 헤헤 하고 웃었다.
한때는 잘나가던 아이돌이였던 선생님. 전국을 강타했던 선생님의 냥이 춤과 노래는
전설로만 듣고 있던 우리들이었다. 1세대 아이돌 선생님은 지금 우리 학교에서 뮤지컬을
가르치고 계셨다. 막말대마왕 마이클 선생님은 괴팍한 성격으로 아무도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아서 모태솔로라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마이클 선생님 호모래"
심지어는 이런 괴담까지 떠돌았을 정도였다.
"집에 데려다 줄께 타라"
선생님은 한사코 걸어가겠다는 나를 우리집 앞에 내려주셨다.
"널 기다리며?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네?"
빈 가게 앞에 걸린 간판을 보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엄마가 좋아 하던 가수분 노래 제목이래요"
"어? 니네 엄마 성함이 뭐냐?"
"김미경인데요"
"어? 네가 김미경씨 딸이였어?"
"우리 엄마 아세요?"
"내 팬클럽 회장이였지"
"어머! 널 기다리며가 그럼 선생님 노래예요?"
"날 떠난 널 오지 않을 널 기다리며 내 가슴이 탄다..."
선생님과 나는 동시에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은 전설의 고양이 춤을 추셨다.
"어머낫! 멋진 고양이다!!"
빤히 우리를 바라다보고 있던 봄이를 본 선생님은
귀족적 풍모가 느껴지는 고양이라고도 하셨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어제 봄이와 나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봄이가 흘리던 피가 감쪽 같이 멎은 것과 어제 그토록 심했던 내 고열과 통증이 가라앉은 것에
대해 듣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름아, 넌 UFO가 있다고 생각하냐?"
"그럼요!"
"UFO 봤어?"
"아뇨"
"안봤는데 어떻게 있다고 생각하니?"
"제가 하늘을 잘 안보거든요. 하루 온종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있다고 생각하니?"
"본 사람이 있으니까 있다고 하는 거잖아요"
"빙고!!! 바로 그거야. 세상엔 우리 머리로 이해 안가는 일들이 있지. 그걸 불가사의라고 하는 거야.
난 불가사의를 믿는다. 저 고양이 상처가 낫고 니 고열이 가라앉은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거야. 관심을 갖고 정성을 들이면 불가사의한 일이 사의한 일이 되는 것이야"
나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수 없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 때 선생님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자가격리자 앱이 작동을 해서 위치 추적을 하였고, 빨리 자기 구역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였다.
선생님은 혼자 있을 나를 땅이 꺼져라 걱정을 하면서 가셨지만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내겐 든든한 봄이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를 얻은 기쁨이 컸다.
초록대문집을 떠나 비로소 얻은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면서 지냈다.
엄마의 가게에 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오디오를 작동시켜서 마이클 선생님 노래를 들었다.
20여년이 지난 노래지만 마이클 선생님 노래는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선생님은 날마다 내가 무사한지 전화를 하셨고 나는 선생님과 음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노래를 불렀고 선생님은 전화로 보컬 트레이닝을 해주셨다.
봄이는 노래를 부르는 내 주변을 "갸르릉 갸르릉" 하면서 돌았다.
"되었다!! 가을이 너 일취월장인데? 역시 외로움과 고뇌가 목소리를 만든다"
선생님은 처음으로 칭찬을 해주셨다.
"가을이 넌 이제 선생이 필요없다"
막말대마왕이자 괴팍한 드라큘라 좀비 마이클 선생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나는 내귀를 의심했고 꿈이 아닌지 다리를 꼬집어도 봤다.
"야!!! 봄! 마이클 선생님이 나 필요없대. 축하해줘 축하 축하~~"
봄이가 좋아라 웃고 있었다.
진심 축하해 주는 봄이의 표정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봄이는 특별한 나의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