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어린아이> (2)
"자~그럼 본격적으로 머리를 해볼까나?"
어느새 필요한 도구들을 들고 돌아온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최 실장을 올려다보았다. 최 실장은 그런 현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분무개와 빗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다가오자 현은 주먹을 꽉 쥐는 것으로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몸을 감추려고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손을 데려는 그녀의 행동에 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탁- 쳐내고 말았다.
"…아…"
현이 자신의 손을 쳐내자 최 실장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막상 손을 쳐낸 현, 본인은 더 놀라 흔들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머릿속을 관통하듯이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더러워!!'
'쟤 만지면 안 돼!! 저주 받는단 말이야!!'
'어두워!! 음침해!! 병균 옮을 것 같아!!'
"저, 절…만지면 안 돼요…."
"현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저앉아 떨고 있는 현을 바라보았으나 현은 공허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나를…나를 만지면…저주…병…옮고…더럽고…안 돼…."
하지만 현이 중얼거리는 단어의 일부들을 들은 최 실장을 얼굴을 굳혔다.
얼마나 상처를 받은 아이인가. 그저 만지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면 도대체 얼마나 큰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것인가.
쌓이고 쌓여 무게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상처들을 느낀 최 실장은 조심스레 현의 앞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키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너는 더럽지 않아."
"아…아니에요…전…더러워요…."
"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그저 평범한 아이일 뿐이야."
"아, 아냐…"
"아니,"
계속해서 부정하는 현의 말에 최 실장은 고개를 저으며 두 손으로 현의 얼굴을 소중하게 감쌌다. 조금이나마 드러난 현의 얼굴을 보며 최 실장은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이쁜 너를 만진다고 저주를 받을 리 없어."
"하…하지만…"
"그럼 나도 이렇게 예쁜 너를 만졌으니까 저주를 받아야겠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현은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최 실장은 두 팔로 현을 감싸 안으며 말하였다.
"이 세상에 특정 사람을 만진다고, 가까이 한다고 저주 받는 일은 없어. 그런 것은 전부 다 미신이고 거짓말이야. 현이 너를 질투해서 하는 말이야."
"……."
"그러니깐 현이 너는 절대 저주받은 아이가 아니야."
자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이어지는 말에 현은 자신의 볼에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자신 또한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으…“
“울어. 맘껏 울어도 돼, 현아.”
“으아아아앙…!!!”
그것은 사람에게서 로부터 처음 느껴본 온기 때문일까 아님 자신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었기 때문 일까.
모르겠다. 눈물의 이유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벅차오르며 따듯해지는 느낌에 현은 감정의 파도에 마음껏 몸을 맡겼다.
**
그렇게 한바탕 그동안의 서러움을 쏟아내고 정신없이 현을 달래주며 머리를 손질 해준 최 실장도 돌아간 후, 다시 사장실에 오게 된 현은 부운 눈으로 한진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고맙긴."
현의 말에 그는 픽하고 웃었으나 그래도 현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하였다.
"고마워요."
꼬마아이 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목소리에 한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
"…네…?"
"아저씨라고 불러. 너한테만 특별히 허락해 주는 거다.“
아저씨라니. 그는 의외로 나이가 많았던 것일까.
그러자 현은 두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고 한진은 다시 사무실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현이 마시던 코코아 잔을 살짝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저는, 한번 입양된 적이 있었어요."
"……."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던 데다가 처음으로 입양됐던 터라 마냥 기대만 하고 갔었어요. 그런데…"
"……."
다시 들어 올린 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달싹였다. 말을 해야 되는데. 몸이 고장 난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였으나 현은 애써 입을 열었다.
"그런데…저에게 펼쳐진 지옥은 고아원이 끝이 아니었어요. 고아원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졌었어요."
"……."
"새어머니는…맨날 회초리로 매질을 하고 새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서 저에게…저에게 손찌검을 하셨어요."
어느새 창밖에서 눈을 떼고 굳은 눈으로 현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진 이었다. 그러나 현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약 한달 후에 그 집에 불이 났어요."
"불?"
한진은 갑자기 뜬금없는 현의 말에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되묻자 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하였다.
"온 동네사람들이 119를 부르고 난리법석을 떨면서 정신없이 불에 타고 있는 그 집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
"…다들 뒷말을 하기에 바빴어요. 저 사람 저럴 줄 알았다고. 맨날 부인이랑 싸워대더니 결국 저렇게 가는 구나 라고요."
"……."
"몇 분 뒤에 소방차가 왔고 저는 몰래 그 집을 빠져나왔어요. 왜냐하면…"
한진은 다음으로 들려올 말에 팔짱을 끼고 여전히 굳은 눈으로 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현은 이미 식어버린 코코아잔을 탁자에 떨리는 손으로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그 불…사실 제가 낸 것이었거든요."
"뭐?"
한진은 이것만큼은 예상 못했는지 그답지 않게 눈을 크게 뜨고 현을 바라보았다.
"새어머니는 매일 치장하고 다른 남자들이랑 노느라 바빴던데다가 매일 술에 찌들어 살았던 새아버지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어요."
"……."
"제가 불을 냈다는 사실이 들킬까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며칠 동안은 어두운 골목을 지나다니면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다간 내가 죽겠구나 싶어서 다시 지내던 고아원에 들어갔어요."
"……."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까 두려웠어요. 전에 살던 고아원에 다시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도 그곳엔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없어져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었던 무질서한 고아원에서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때 당…아니 아저씨가 나타나신 거에요."
어느새 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한진은 굳은 얼굴로 현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현의 한마디에 뻗으려던 손이 그대로 허공에 멈춰버렸다.
"…저에게는 사람을 판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뭐?"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고유의 색이 있지만 그 색이 어둡거나 밝거나 아님 맑거나 탁하거나 둘 중 하나에요."
아까 사시나무 떨듯이 떨던 그녀가 맞는 건지 아까와는 다른 흔들림 없는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처음 입양 되었을 땐 그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다 저처럼 보이는 줄 알고 가만히 있었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걸 겨우 2년 전에 깨달았어요."
"……."
"…아저씨를 따라온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아저씨의 색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매우 어중간해요."
"어중간하다고?"
이번에는 한진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현을 바라보며 묻자 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왜 그런지는 저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본인이 더 잘 알리라 믿어요."
이제는 흔들림 없는 톤으로 말을 마친 현은 손을 뻗어 식다 못해 이미 차가워진 코코아잔을 들어 마셨다.
"그 이유 때문에 아무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따라온 거에요. 그리고…적어도…생명의 은인에게는 말해줘도 될 것 같아서 이 말을 한 거에요.“
“아저씨, 혹시 이런 능력을 가진 제가 괴물…같나요…?”
"……."
현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한진은 굳은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손을 뻗어서 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전혀.“
오히려 나에겐 더없는 행운이야.
한진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